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 고온/사례 (문단 편집) === 18세기 === * [[1777년]] 12월 ~ [[1778년]] 1월 - 국왕 정조가 "겨울철이 깊어졌지만 추위가 혹독하지는 않다"고 언급하였는데[* [[1777년]] [[11월 13일]](양력 [[12월 12일]])자 기록.], 추위가 한창일 1월임에도 도저히 겨울같지 않았는지, '''겨울임에도 얼음과 강물[* [[한강]]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명.]이 얼지 않고, 새싹이 돋아나려 하니 큰 이변이다'''라고 하는 기록까지 있다.[* [[1777년]] [[12월 19일]](양력 [[1778년]] [[1월 17일]])자 기록.] 이틀 뒤에도 얼음 만드는 일을 줄이라고 명령할 정도. * [[1789년]] 5월 - 양력 1789년 5월 7일 기록에는 "요사이 날씨가 삼복 더위와 다름없는데, 역부(役夫)들이 뙤약볕 밑에서 진흙탕을 뒤집어 쓸 것을 생각하니 가엾기 그지없다. 특별히 반찬과 쌀을 내릴 것이니 밥도 짓고 술도 빚어, 역사를 마치는 날에 경이 도청(都廳) 이하 장교와 역군(役軍)들을 거느리고 넓게 트인 곳에서 풍악을 벌이고 음식을 나누어주어, 한편으로는 고사(故事)를 따르고 한편으로는 힘든 일을 해낸 데 대해 보답하고 칭찬해주라." 라는 기록이 있다. 5월 초인데도 벌써 삼복과 같은 더위를 보였다고 기록되어 이상 고온이 매우 상당했을 듯 하다.[* 5월 초임을 감안하면 실제 기온은 30도에 못 미치는 26~29도일텐데, 구름 없이 강한 햇살이 쬐여서 체감 기온은 삼복 못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같은 온도여도 삼복철에 느끼면 시원하지만 5월 초에 느끼면 상당히 더운 것도 있고, 2020년 5월 6일에 27.4도를 기록했는데 강한 햇빛 탓에 체감은 여름 못지 않게 더웠던 전적도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5월 초에 30°C를 넘은 기록이 있어서 단정지을 수만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